낙원의 겨울
겨울이 오고 떠날 시간이 됐다. 봄이 되어 날이 따뜻해지면 이곳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떠날 채비는 별로 없지만, 돌아올 준비를 미리 해둔다. 떠날 것과 돌아올 것을 동시에 걱정해야 하는 신세라니.
불행 중 다행으로 돌아 올 준비는 아주 간단하다. 이곳의 위치를 기억하기 쉽도록 내 냄새를 남겨두는 것이다. 이곳은 고양이들 사이에서 '낙원'이라 불릴 정도로 살기 좋은 동네다. 인간들이 밥과 물을 때 맞춰 채워주고, 오르내리며 뛰어놀 수 있는 바위벽이 있고, 나무로 된 큰 정자 위에 앉아 비를 피하곤 했다. 모든 것이 갖춰진 낙원에 하나 없는 것은, 추위를 피할 좁은 공간이다. 사방이 트여있어 겨울이 되면 칼바람과 쌓이기만 하는 눈 때문에 엄마와 동생들 모두 얼어 죽었다.
인간들은 귀여운 우리를 부르고, 쓰다듬고, 밥을 주는 건 좋아하지만, 우리가 어디에서 죽는지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사방이 막히고, 입구가 좁고, 따뜻한 담요가 깔린 겨울집. 인간이 이런 집을 나에게 선물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낙원을 떠나야 할 일도 없을 텐데. 하긴, 누군가가 물그릇 밥그릇을 치워버렸는지 가끔은 온데 간데 없이 찾을 수 없을 때가 있는데, 겨울집이 생겼다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정말 큰 일이다. 그때가서 겨울을 날 곳을 찾기란 너무 늦을 테니까.
화단 구석에 흙을 파고 똥을 눈다. 샥샥- 소리 없이 그 위에 흙을 덮는다. 바로 옆에 흙을 파고 오줌을 눈다. 샥샥- 소리 없이 그 위에도 흙을 덮는다. 겨울을 지나 봄이 됐을 때 이곳으로 쉽게 돌아오기 위해 가을 내내 반복해 온 일이다. 평소와 같아 보일지 몰라도, 낙원의 위치를 기억할 수 있도록 똥 오줌 눌 곳을 고심해서 골랐다. 땅 속에서 꽁꽁 얼었던 내 똥이 높아진 기온 덕분에 썩고 땅에 스며들면서 나는 냄새. 나는 그 냄새를 따라 이곳으로 돌아올 계획을 세웠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낙원을 떠난 고양이가 봄이 되어 이곳에 돌아온 적이 없기 때문에, 이 방법이 과연 통할지는 미지수다. 그들은 이곳을 다시 찾지 못할 만큼 멀리 가버렸거나, 낙원의 겨울을 떠났음에도 추위로부터 살아남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보통 낙원에 사는 고양이들은 이곳에서 겨울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이거나, 운이 좋게 겨울에서 살아남은 어른들이었다. 하지만 올해 새로 태어난 아기들은 납치되거나 병으로 죽었고, 다 큰 고양이들은 인간에게 잡혔다가 다시 돌아온 후 성욕을 잃었다. 그러니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이곳에서 겨울을 직면하느냐, 떠나서 새로운 짝을 만나 함께 겨울을 나느냐 두 가지 뿐이었다. 그러지 못하면 낙원에는 더 이상 고양이가 살지 않게 될 것이다.
밥을 주는 인간이 왔다. 나는 뱃살을 양옆으로 출렁이며 그릇 앞으로 달려갔다. 사료 알들을 꼭꼭 씹어 먹었다. 식사를 제대로 끝내는 것, 최대한 많이 먹어 몸 속에 비축해두는 것이 이곳을 떠나기 위한 내 마지막 준비였다. '호랑이가 오늘 유독 밥을 많이 먹네.' 인간은 내 그릇에 신경 써서 밥을 더 부었다. 입가심으로 물을 할짝 거리고 있을 때 인간이 말했다. '내일 이 시간에 또 보자.' 나는 뒤돌아 걸으며 생각했다. '내년 봄에 다시 보자.' 발바닥에 닿는 새벽 공기의 기운이 어제보다도 더 차가워진 걸 느끼며 계속 걸었다.
(창작하는 아침 모임에서 '따로 또 같이' 즉흥 소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