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과 나
속보를 전하는 글방 지기의 얼굴이 심각했다. "여러분, 윤석열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고 합니다. 다들 한 번 보셔야 할 것 같아요." Zoom 화면을 통해 서울의 소식이 괴산을 거쳐 제주도 우리 집 거실까지 재빠르게 날아왔다. 나는 황급히 옆 책상에 앉아 있던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 "방금 윤석열이 비상계엄령 선포했댄. 기사 봔?" 화들짝 놀라는 것도 잠시, 남편의 손가락은 갓 명령받은 MI5 요원처럼 키보드 위에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군대에 늦게 간 탓에 올해까지도 동원 예비군에 다녀온 남편은, 예비군에 끌려갔다 풀려난 날이면 밤새 두통을 앓았다. 산책길에 동네 공원 앞을 지나며 남편은 말했다. 전쟁 나면 이 공원이 내 집결지야. 전쟁 나고 6시간 안에 여기로 모여야 해. 그 말은 6시간 안에 어떻게든 도망쳐야 한다는 소리지. 우습다며 피식대는 나와 달리 남편의 얼굴은 비장했다. 지금 남편이 검색하고 있는 건 속보인가 탈주로인가.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는 글방 동료들이 다음 순서와 합평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모두가 제정신일 수 없는 상황이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체 왜?’ 남편이 찾고 있는 기사만 기다릴 수가 없어서, 글방 지기가 채팅방에 공유해 준 SBS 유튜브 라이브 대국민 담화 영상을 재생했다. 윤석열의 말을 들으며 목덜미에 뻐근하게 화가 올랐다. 담화문 낭독을 끝낸 윤석열이 화면 밖으로 나가고, 어떤 남자가 다시 단상에 올라 그의 의자를 책상 안쪽으로 집어넣는 모습을 봤을 땐, 뭐랄까. 이게 뚜껑이 열린다는 느낌이구나 실감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앉았던 의자를 제 손으로 정리하는 법조차 모르는구나. 이런 사람이라면, 그만의 세계 안에선 비상계엄령이 말이 됐을는지도 모르겠다. '내 편 안 들어주는 종북반국가 세력! 처단한다!'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비상계엄령’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공습’이었고,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내 무릎 위에 잠든 11살 고양이’였다. 너무나도 상반된 두 개의 이미지가 혼란스러웠다. 따뜻한 차, 도톰한 담요, 소파와 협탁을 비추는 노란 조명, 그 위에 놓인 노트북 화면 속 글방 동료들. 10분 전만 해도 완벽하게 조화롭고 완전하던 내 생활 공간이 갑자기 다르게 느껴졌다. 글방 마무리쯤 누군가 말했다. "아니, 이런 말 하면 이제 잡혀가는 거 아니에요?" 그 순간 내가 사는 집 지붕이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내 집에서조차 속 시원하게 욕할 수 없다. 삽시간에 부자유가 나를 덮쳤다. 흉볼 권리조차 잃은 나는 온몸에 힘이 쭉 빠진 듯 무기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