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는 동네
별안간 침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아래 침대가 있는 자리인 데다 물방울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당근으로 찾아낸 누수 전문가 여럿에게 전화했지만, 하필 주말이었던지라 바로 방문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한 가지 수확은 있었다. 전화로 상황 설명을 들은 모두가 ‘배관이 터진 게 아니라 방수가 안 돼서 빗물이 집 안까지 새어 들어온 것 같다’고 의견을 모았다. “어제 비가 많이 왔잖아요? 그게 외부 벽이나 지붕 틈으로 들어와서 천장에 고여있다가 떨어지고 있는 거거든요. 살고 계신 건물이 언제 지어진 지 아세요?” “30년 가까이 된 건물인데…” “거봐요. 오래된 건물은 어쩔 수 없어요. 일단 주말엔 비 소식이 없으니까요.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전화 드리고 한 번 찾아뵐게요.” 전화를 끊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비만 오지 않으면 급히 공사할 필요는 없다고 하니 우선은 다행이었다. 그럼에도 큰 한숨이 푹-하고 절로 쉬어졌다. ‘너도 이제 늙었구나.’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이 집이 내 말을 듣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혼잣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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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전, 내 부모는 먼 친척의 도움을 받아 이 집을 지었다. 4.3 사건 때 오사카로 넘어간 ‘일본 할아버지’가 제주에 남은 가장 가까운 친척인 아빠에게 벌초와 제사를 부탁했고, 그 대가로 주택을 지어 무상으로 살게 해준 것이다. 언제쯤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지 꿈만 꾸던 가난한 부부에게 이 집은 난데없이 생긴 행운이었다. 심지어 그냥 집도 아닌 3층짜리 다세대 주택이라니! 직사각형으로 기다랗게 생긴 부지에 지어진 건물 1층 전부를 우리 가족이 사용했고, 외부 계단으로 이어지는 2층과 3층은 두 세대로 나뉘어 한 건물에 총 다섯 가구가 살았다. 건물이 완공되기 전, 엄마의 손을 잡고 집을 처음 구경하러 왔던 날을 기억한다. 5살이었던 내 눈에 갓 지어진 실내는 너무 새하얬고, 조금이라도 더럽힐까 걷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좀 있으면 여기로 이사 올 거야.’ 내 방과 언니의 방을 차례로 보여주던 엄마의 목소리가 한없이 고조되어 있었다.
오래된 단독 주택과 용도 없이 방치된 공터가 대부분이던 작은 동네에 우리 집은 유일한 신축 건물이었다. 엄마는 자신에게 이렇게 멋진 집이 생긴 것이 너무나도 감사해서 아침마다 집 앞 골목길을 청소하기로 마음먹었다. 네다섯 가구가 나란히 마주 보는 작은 골목 전체를 꼼꼼하게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줍고 낙엽을 쓸었다. 근처 이웃들은 젊은 새댁이 부지런하고 야무지다며, 이 집에 사는 사람이냐고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는 특유의 친화력과 발랄함으로 동네 아줌마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들을 집으로 초대해 믹스커피나 깎은 사과를 대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가 초대하지 않아도 매번 비슷한 멤버가 거실로 모여들었다. 그렇게 우리 집은 제주시 이도동의 사랑방이 됐다.
엄마가 집에 들인 건 동네 아줌마들뿐 아니라 이 동네 그 자체였는지도 모르겠다. 아줌마들이 바리바리 챙겨 온 음식들, 주변인들의 근황과 가십거리, 자신의 엄마를 찾아 현관문을 열고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내 또래 친구들까지. 학교를 마치면 나는 다른 곳에 들르는 일 없이 집으로 뛰어와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친구들과 집 구석구석을 헤매며 놀았다. 1층 창문을 열어 화단으로 뛰어내리고, 던지면 벽에 붙는 끈적이를 가지고 놀거나, 보일러 기름통이 있는 지하실을 놀이기지로 꾸미고, 외부 계단을 오르내리며 숨바꼭질했다.
2, 3층에 사는 어른들은 시끄럽게 노는 우리를 혼낼 수 없었다. 뛰어노는 아이들이 자신의 자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202호에 살던 민희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나와 가장 절친한 친구였고, 301호에 살던 동생을 데리고 다니며 나는 늘 대장 노릇을 했다. 나에게 동네는 수평적인 개념이 아니라 수직적인 것이었다. 내 이웃은 옆집이 아니라 윗집이었고, 대문을 나서야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사는 곳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었다. 지역적 경계가 아닌 특유의 그리움으로 ‘동네’를 정의할 수 있다면, 그 시절만큼 내가 어떤 커뮤니티에 자연스럽고 끈끈하게 속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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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우리 집을 사랑방처럼 드나드는 아줌마들은 점점 줄었다. 또래 친구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놀 시간이 없는 학생이 됐다.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한 후 10년간 서울에 살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제주시 이도동은 내가 알던 그때의 모습이 아니었다. 바로 앞 공터는 드라이브 스루까지 갖춘 맥도날드가 되었다. 오래된 주택들은 허물어지고 오피스텔과 빌라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우리 집 2층과 3층은 혼자 사는 사람들로 채워졌는데, 마주치거나 인사를 나눌 일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이 건물 어딘가에서 물이 새고 있다. 외벽이 갈라지고 지붕에 틈이 생겼다는 뜻이다. 모든 것이 변해도 그대로일 줄만 알았던 우리 집 역시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아주 서서히 낡고 허물어지고 있었다. 똑. 똑. 똑. 똑. 받쳐 둔 국그릇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세월을 일깨워 주는 초침 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전과 같은 집에서 살고 있지만 다시는 그때와 같은 동네에 살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