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수집가
남편은 방금의 대화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곧 이사 갈 집의 화장실 리모델링을 해 줄 업체 사장님과 미팅을 끝내고 나서는 길이었다. 나는 어떤 부분이 이해되지 않았느냐 물었고, 남편은 일부터 백까지라고 답했다. 사장님 설명을 듣는데 모르는 말이 너무 많이 나와서 중간부터는 그냥 딴생각했어. 공간을 꾸미고 고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남편은, 운전을 못 하는 나를 위해 이곳까지 그저 동행해 준 것뿐이었다. 하지만 함께 살 집이 어떻게 바뀔지 관심이 없는 남편에게 서운함을 느낄 겨를은 없었다. 오케이, 좋았어. 수도 배관을 왼쪽으로 옮겨서 수건걸이 2개를 위아래로 달 공간을 확보하는 거야. 졸리 컷 그런 건 비싼 데다 유행만 타니까 그냥 깔끔하게 기본 세면대로 가자고. 수건장은 노출로 가져가고, 600각 타일도 요즘은 너무 흔하잖아. 타일 단면이 드러나는 게 나는 훨씬 좋으니까 재료 분리대 없이 백시멘트로 채워달라고 해야겠다. 구배 신경 써 달라고 하는 것만 한 번 더 말씀드려야겠네. 나는 남편의 시큰둥한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머릿속 계획을 조잘거리며 정리했다.
이사 갈 집을 처음 보던 날, 나는 단박에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어린이날 선물로 갓 받은 장난감을 살펴보는 아이처럼, 집 구석구석을 요리조리 뜯어봤다. 직전에 같은 세입자가 20년 동안 산 공간이었다. 세입자가 바뀔 때 한 번씩 리모델링한 다른 세대와 달리, 이 집만은 30년 전 건물이 처음 지어질 때 그대로였다. 값싼 합지 벽지가 누렇게 변해서 벽에 딱 달라붙어 있고, 장판은 손으로 뜯어도 들렸으며, 나무로 된 문은 (화장실 입구를 포함해) 닫히지도 않았다. 현관문의 아랫단은 녹슬어 굵은 가루가 날렸고, 주방의 상하부 장은 옥색과 민트색 사이 어중간한 색이었다. 심지어 흔들어 뜯으면 철거가 가능하겠다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붙어있었다. 하지만 이 낡고 지저분한 겉모습 속에서 나는 작고 단단한 가능성을 발견했다. 우선 집 구조가 길쭉하니 독특했다. 현관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화장실과 방 하나가 있고 정면에 거실이 있다. 그리고 안쪽으로 방이 하나 더 있어 거실 겸 주방을 사이에 둔 대칭 구조다. 안쪽 방으로 들어가는 커다란 미닫이문을 틀까지 철거하면 시원하게 탁 트일 것 같았다. 창문은 공들여 짠 살을 가진 목문이었다. 오래된 집답게 쉽게 썩는 석고보드 대신 합판으로 마감한 천장이 세월을 잊은 듯 튼튼했다. 하지만 그보다 마음에 든 건 집의 작은 크기였다. 15평. 이 정도라면 직접 고쳐볼 수 있겠어. 마음속에 작은 불씨가 켜지는 순간이었다.
집을 계약하고 우리는 4개월이 넘도록 새집으로 이사하지 못했다. 당시 남편과 나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브레이크 타임에 잠깐, 퇴근하고 잠깐 현장에 나와서 일하는 정도로는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귀한 휴일까지 모두 반납했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내가 가진 시간과 체력에 비하면 30년 된 15평 집에는 고칠 것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식당에서 요리하고 손님을 맞이하느라 녹초가 된 상태에도, 공사 현장에만 들어서면 터그 놀이하는 강아지처럼 초흥분 상태가 됐다. 목장갑을 단단히 끼고 고무망치로 신발장과 주방장을 해체하는 일. 합지를 물에 불려 스크래퍼로 모두 긁어내 시멘트벽만 남기는 일. 꾸덕한 퍼티로 울퉁불퉁한 벽을 고루 메우는 일. 연장을 다룰 때 나는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페인트를 칠하기 위해 굳은 퍼티를 사포로 갈아내면서 방진 마스크와 보호안경을 뚫고 들어오는 먼지를 눈코입으로 먹을 땐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지만, 페인트를 흠뻑 먹은 롤러로 벽 위를 흔적도 없이 덮는 일은 고된 산행을 끝내고 정상에 서 있는 듯한 성취감을 줬다. W자를 그리며 빈 벽을 왔다 갔다 하는 롤러를 따라 톤다운 된 민트색 페인트 자국이 정직하게 남았다. 어쩌면 몇 년이 지나 색깔이 지겨워졌을 때, 내가 원하는 색으로 다시 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점이 좋았다. 내가 고친 집이니까 언제든 내가 다시 손 볼 수 있다는 감각이. 완성된 집에 몸만 들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를 때처럼 집의 형태와 소재도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가.
그랬기에 화장실 공사는 나에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까딱하면 누수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될 것이 두려워 화장실만큼은 업체에 통으로 맡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식당 인테리어를 반셀프로 진행하고, 일 년 뒤 이 집을 약 ¾ 셀프 인테리어 정도로 진행하면서 깨달은 진리가 하나 있다면, 공간을 잘 고치는 일의 90%는 좋은 작업자를 만나는 데 달려있다는 사실이다. 좋은 작업자란 우선 실력자다. 현장을 대충 보고 어림짐작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별 시나리오를 줄줄 나열할 수 있을 정도로 경험이 풍부해야 한다. 그리고 둘째로, 고객을 등쳐먹지 않아야 한다. 터무니없이 높은 견적을 제시하면서, 이것보다 싸게 해주는 애들은 실력이 부족하거나 싸구려 자재를 쓰는 거라고 나를 가스라이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합리적인 견적에 현장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실력자와 함께하면서 그들의 말이 허울 좋은 세일즈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건, 나이 어린 여성을 무시하지 않는 작업자를 찾아야 한다는 거다.
지금까지 50명이 넘는 사장님들을 만나봤다. 설비, 타일, 도배, 마루, 덕트, 목수, 전기, 도장. 분야별로 업체를 선정하기 전에 기본 4~5명은 만나 현장에서 미팅했기 때문이다. 요즘엔 여성 작업자도 많다고 하지만, 인테리어와 건축 업계는 압도적으로 성비가 파괴되어 있는 탓에 내가 만난 사장님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남성이었다. 나이는 30대 후반부터 60대까지 다양했는데, 다른 현장에 있다가 바로 온 듯 여기저기 뭔가를 묻힌 채 나타난다는 점은 모두가 비슷했다. 어떤 사장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 설명했다. 내가 상상한 바를 말하면 그건 그냥 안 된다고 말을 자르기도 했다. 그 순간 이미 그는 내 마음속에서 탈락이었지만, 나는 호락호락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내가 원하는 방법이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했다. 미팅을 준비하면서 업자들이 만든 유튜브 영상을 통해 기본기를 모두 파악하고 아이패드로 도면까지 그려서 가져가는 나였다. 그럼 그들은 ‘뭐야, 이 친구 뭘 좀 아네?’ 하는 당황한 기색으로 내 말을 수긍했다. ‘그렇게 하면 안 예뻐요.’ ‘그건 트렌드 다 지났어요.’ 하는 말을 들으며 나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잘 안다는 듯이 구는 사람들에게도 진절머리가 났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내가 남편과 동행한 날에는 갑자기 친절한 세일즈맨이 됐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에게 무언의 동의를 구하며 열심히 작업 방식을 설명하는 사장님들을 보면서, 나는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같은 말은 집어치우기로 했다. 나는 미묘한 태도 변화를 보이는 사장님들을 단도직입적이고 똑 부러지게, 그러면서도 예의 바르게 대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하게 됐다.
사장님들을 일일이 설득하고 구슬리는 것보다 내가 직접 하는 게 오히려 더 편했다. 비용 면에서도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화장실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미팅을 위해 만났지만 이상한 훈수와 잔소리만 듣고 헤어지는 일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 땐, 그냥 화장실을 포기할까도 싶었다. 하지만 그때, 구세주처럼 세 가지 조건에 모두 부합하는 사장님을 만났다. 그는 인내를 가지고 내가 원하는 구조를 함께 상상해 줬고,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짚어줬고, 더 나은 해결 방안을 제안했다. 심지어 견적도 합리적이었다. 단 한 번의 미팅만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결정했다. 아 하면 아, 어 하면 어. 고민과 해결책, 아이디어와 적용 방법을 탁구공처럼 주고받으며 단전에서 희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미팅을 마치고 저녁 영업을 위해 식당으로 돌아가는 차 조수석에 앉아, 나는 사장님의 번호를 휴대전화에 저장했다. ‘(확정)OO 설비’. 저장된 번호 목록 아래로 ‘(확정)OO 목공’, ‘(확정)OO 마루’하는 식의 이름들이 보였다. 집이 조금씩 완성될수록 내 연락처에는 믿을만한 사장님들의 번호가 하나씩 쌓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