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들 수 있는 가장 멋진 호랑이
아마 이 실험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 도로 가운데 서서 하늘을 바라본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그 옆에 다른 한 사람이 붙어서 하늘을 바라본다. 역시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세 명이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길 가던 사람들은 호기심에 발걸음을 멈추고 하나둘 모여 하늘을 쳐다보기 시작한다. ‘3의 법칙’이라 불리는 이 실험이 유독 유명해진 이유는 숫자 3이 너무나도 작은 수라는 데에서 오는 신기함 때문일 것이다. ‘단 세 사람이 모이는 것으로 군중을 이룰 수 있다니!’
대학에 다닐 때 ‘별의별’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동했다. 연극, 사진전, 출판 등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는 팀이었는데, 돈 한 푼 못 벌면서도 평생 가장 열심히 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사람을 모으고, 무대를 세우고, 글을 인쇄할 돈을 구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서울시 청년허브에서 진행하는 ‘청년참’ 커뮤니티 지원 사업을 알게 됐다. 공교롭게도 신청할 수 있는 인원 기준이 최소 3명이었고, 마침 별의별 운영진 역시 나 포함 3명이었다.
요즘이야 청년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이 다양하지만, ‘3명만 모이면 밥값을 포함한 활동비 100만 원을 세금으로 지원한다’는 사업의 내용이 10년 전으로서는 혁신적이었다. 이제는 친구가 된 당시 사업 담당자 말을 빌리자면 ‘뜻 맞는 사람들을 그저 모이게 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친구도 혹시 3의 법칙을 알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삼인성호’라는 사자성어를 기억하고 있던 걸까?
무엇이 됐건, 나는 청년참 사업의 혜택을 받으면서 '삼인성호'가 실현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뜻 맞는 사람 세 명이 모이는 게 언뜻 보면 무척 쉬워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독특한 관심사로 뭉친 커뮤니티를 만나면 내 삶의 지평이 넓어지는 듯 했고, 지원 사업을 통해 만난 동료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모두가 각자 최선을 다해 멋진 호랑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알아본 누군가가 함께 하늘을 바라봐 주기를 기다리면서.
강단이 ‘책과 나’ 아이디어를 꺼냈을 때, 나는 사실 썩 내키지 않았다. 별다른 대화도 없이 각자 책만 읽는 행사가 소극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한 공간에 모여 독서에 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는 강단의 말에 나는 100% 설득당했다. 그저 원하는 시간에 와서 전자기기 사용 없이 책을 읽다 가는 것이 전부인 행사지만, 우리는 여기에 ‘모임’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뜻이 맞는 사람이 한데 모이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두 번째 ‘책과 나’ 모임을 가지면서 강단의 상상이 작은배 사무실에 그대로 구현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에 깊게 집중하는 시간은 나에게도 무척 오랜만이었다. 책에 고개를 묻고 열중하다가 잠시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책과 나 뿐 다른 무엇도 방해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혼자이지만 전혀 혼자가 아니구나.' 손에서 잠시 책을 놓고 든든한 기분을 조용히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