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nbi Ko

할머니의 임종복

할머니를 모시고 성이시돌복지의원에 도착한 첫날, 크리스틴 수녀님은 임종복을 준비하라고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임종복이 뭔가요?” “어떤 옷을 준비해야 하나요?” 저와 아버지는 수녀님께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이곳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장례를 치를 곳까지 이동해야 하는데, 그때 환자복 대신 입을 옷을 임종복이라 부른다고 수녀님은 차근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할머니가 좋아하던 옷이나 평소에 자주 입던 옷을 준비해 달라는 말을 들으며 저는 혼자 생각했습니다. ‘하마터면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입는 옷이 환자복이 될 뻔했구나.’ 우리 가족은 암, 간병, 투병, 죽음 이런 것들에 대해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할머니가 식사를 잘하지 못했던 건 위에 암이 생겼기 때문이었고, 이미 종양이 복부 전체에 퍼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 1개월밖에 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임종복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들리는 만큼, 우리는 할머니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성이시돌복지의원에서 할머니는 한 달 반쯤 머물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비슷한 상황을 자주 겪었습니다. 할머니가 고집스럽게 끼고 있던 틀니를 수녀님의 설득으로 빼 드렸을 때,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할머니의 입속을 닦아줄 때, 막힌 소변줄을 간호사 선생님이 뚫어주셨을 때, 통증으로 할머니가 아파할 때, 할머니의 심박수가 너무 올라가거나 내려갈 때. 그때마다 수녀님, 간호사 선생님,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는 지금의 상황이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할머니를 대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빠르게 바뀌는 할머니의 상태를 보면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준비도 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깨달아야 했습니다. 괴롭고 슬프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됐습니다. 우리 가족이 모르는 것을 성이시돌복지의원에 계시는 분들은 언제나 알고 있었고, 할머니가 편안해질 방법을 함께 고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가족들이 할머니 곁을 지키는 동안, 저의 언니는 시간을 내서 동문시장 한복집을 찾았습니다. 할머니의 임종복을 사러 왔다고 말씀드렸더니 ‘병원을 떠날 때 할머니는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외출하는 것이고, 그때 입는 옷이 임종복’이라고 한복집 사장님이 설명해 주셨대요. 언니는 고심 끝에 노란색 고운 한복 하나를 사 왔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 옷을 입고 마지막 외출을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임종을 지킨 언니와 아빠는 다행이라고 내내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당직으로 계시던 간호사 선생님과 요양 보호사 선생님이 할머니를 정돈하고 임종복을 예쁘게 입혀드렸다고요. 언니는 할머니가 그 어느 때보다 고왔다고 말하며 울었습니다. 할머니가 탄 사설 앰뷸런스가 병원을 떠날 때, 사람들이 나와서 허리 숙여 인사하며 가는 길을 배웅해 주었다고도 했습니다.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해서 저도 언니와 같이 울었습니다.

저희 할머니는 평생을 독립적이고 굳세게 살아오신 멋진 분입니다. 기분이 좋을 때마다 ‘지금 죽으면 딱 좋다’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그랬던 할머니가 생의 마지막 3개월을 병원에 누워 생활하면서 이런저런 링거줄과 전선을 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계신 모습을 보는 건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가 할머니를 추억할 때, 할머니는 환자복 대신 노란 한복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이게 제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니까요. 만약 성이시돌복지의원에 할머니를 모시지 않았다면…. 이렇게 고운 모습으로 할머니를 기억할 수 없었을 겁니다. 마지막까지 할머니를 환자가 아닌 사람으로 대해 주신 성이시돌복지의원 모든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이시돌복지의원 2025 연간 소식지에 '사별가족의 이야기'로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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