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처럼 우는 아기들
갓 태어난 고요는 똥을 쌀 때 얼굴이 새빨개졌다가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하얀 얼굴로 돌아왔다. 그러면 나와 남편은 누에고치처럼 고요를 꽉 싸매고 있던 속싸개를 조심스럽게 풀어헤치고 서투른 솜씨로 기저귀를 갈았다. 병원에서 쓰는 아기 침대는 내 키보다 높이가 낮아서 허리가 아팠다. 아니, 어쩌면 이 허리 통증은 어젯밤 네 시간 가까이 이어진 진통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시간에 한 번씩 배고프다고 우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느라 웃옷 단추를 모두 풀어 헤친 채, 나는 네 평 남짓한 산부인과 입원실을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아기를 낳고 병실까지 휠체어로 실려 온 것이 불과 8시간 전이라니. 아기가 뱃속에 있었던 것도, 아기를 낳은 것도 모두 머나먼 과거 같았다. 오로 때문에 입은 맘스 안심 팬티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진 아랫배만이 내가 방금 아기를 낳았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나와 남편은 병원에서부터 24시간 모자동실을 하기로 했다. 아기가 배고파할 때마다 젖을 물릴 수 있어야 모유 수유에 순조롭게 적응할 수 있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직접 아기를 돌보면 캥거루 케어도 자주 할 수 있고, 하루 종일 밝은 조명이 켜져 있는 신생아실은 아기가 낮과 밤을 구분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했다. 나는 고요에게 내가 아는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었다.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고, 그만큼 반쯤 미쳐있었다. 잘 낳았으니까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병원에 도착한 후 세 시간 반 만의 출산. 고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초산치고는 아주 순조로운 편이었다. 게다가 나는 오랫동안 바라온 대로 진통제나 촉진제 같은 약물 도움 없이 자연주의 방식으로 고요를 낳았다. 오로지 내 힘만으로 낳은 아기였다. 통증이 엄청났던 만큼, 출산 직후 커다란 성취감이 밀려왔다. 심지어 고요는 기대보다 너무너무 예뻤다. 이렇게 귀여운 아기를 낳은 내가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웠다. 옥시토신 호르몬으로 흠뻑 샤워한 탓에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 아기를 지켜야 한다. 이 아기를 위해서라면 나는 죽을 수도 있다.’ 누가 죽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비장한 사명감이 불타올랐다.
호르몬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버틸 수 없는 시간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2박 3일 동안 조각조각 잔 시간을 다 더해도 8시간이나 될까? 그런데 이상하게 힘들지가 않았다. 잠든 고요가 예뻐서 미친 사람처럼 웃음이 나거나 눈물이 났다. 혹은 웃으면서 울었다. 아기가 배고프다고 울면 동전을 넣은 자판기처럼 자동으로 젖이 나왔다. 배고픈 고요는 체구에 맞지 않게 아주 우렁찬 소리로 울었는데, 숨이 넘어갈 듯 우는 소리가 신기하게도 뻐꾸기 같았다. 으앙 꾹- 으앙 꾹- 아기 새가 어미를 찾듯 악착같은 강성 울음이 병실을 울리면 나는 허겁지겁 옷을 벗고 고요에게 젖을 물렸다. 정확히 말하면 젖을 물리려고 노력했다. 아기도 처음, 나도 처음인 일이라서 원하는 만큼 젖을 줄 수가 없었다. 고요가 찔끔찔끔 식사를 마치고 잠에 들면 나는 잠도 안 자고 유튜브에서 모유 수유 관련 영상을 찾아봤다. 다양한 자세를 공부해서 다음 수유 때 적용해 보기도 하고, ‘아기가 젖을 깊게 못 문다는 신호’ 같은 걸 기억해 뒀다가 살펴보기도 했다.
모유 수유를 위해 병원에서 24시간 모자 동실을 하는 우리 부부는 병원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화젯거리라기보다 걱정거리라고 해야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산모 회복을 위해 신생아실에 아기를 부탁하는 것이 요즘 추세이고, 처음부터 완전 모유수유에 도전하는 경우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신생아실 간호사가 두 세시간에 한 번씩 병실에 내려와 고요의 컨디션을 체크했다. 모유수유를 주로 하는 아기는 엄마 젖이 부족하거나 젖을 잘 빨지 못해서 탈수에 빠지기 쉬운데, 황달이 오거나 체온이 높거나 대소변을 적게 보는 것이 탈수 초기 증상이라고 했다. 어떤 간호사는 티 나게 우려하기도 했다. “탈수 오면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해요.” “아기가 6시간에 한 번은 대변을 봐야 해요.” 벌어지지 않은 일 때문에 으름장을 놓는 간호사를 만나면 높게 치솟았던 자신감이 뚝뚝 꺾이고 무너졌다. 고요에게 해로운 일을 고집하고 있는 걸까 불안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계속 젖을 물리는 일뿐이었다.
모유 수유가 이렇게나 어렵다고 왜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은 걸까. 고요가 오랫동안 오줌을 누지 않거나 밥을 먹은 지 30분 만에 배고프다고 울 때마다 내 탓인 것만 같아 눈물이 났다. 당연히 돼야 하는 것, 세상에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에 계속해서 실패하는 기분이 들었다. 퇴원 하루 전날 고요는 결국 8시간 이상 대변을 보지 못했고, 간호사는 아기를 신생아실로 데려가야 할 것 같다고 우리를 다그쳤다. “이러다가 큰 병원 가서 여기저기 주사 맞고 더 힘들어져요. 분유 보충해야 해요. 아기 제가 데려갈게요.” 고요가 떠난 병실은 너무나도 적막했다. 그때 밥시간이 되었는지 병실로 식사가 배달되어 왔다. 힘들겠지만 그래도 밥부터 먹으라고 남편은 나를 달랬지만, 눈물 콧물 범벅이 돼서 입맛이 없었다. 그래도 다음 수유 때는 젖이 조금이라도 더 나왔으면 하는 생각에 꾸역꾸역 미역국을 입에 퍼넣었다.
언제 잠에 든 걸까. 수유하러 오라는 신생아실 전화를 받고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산후열 때문에 자면서 땀을 많이 흘렸는지 몸이 으슬으슬 추워서 얇은 카디건을 걸치고 신생아실로 향했다. 고요를 데려갔던 간호사는 보이지 않았고, 좀 더 나긋나긋하고 상냥한 간호사가 나를 신생아실 옆 수유실로 데려갔다. “많이 피곤하죠? 고요가 다행히 소변도 봤고, 지금까지 쭉 잘 잤어요. 여기서 준비하고 계시면 제가 고요 데리고 나올게요.” 나는 고요를 기다리며 소파에 바로 앉아 수유 쿠션을 무릎 위에 올리고 자세를 고쳐 앉은 후 비장한 마음으로 맨 가슴을 꺼냈다. 그때 닫혀있는 신생아실 문 뒤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으앙 꾹- 으앙 꾹- 뻐꾸기 소리였다. 고요인가 싶어서 귀를 기울이는데, 곧이어 다른 아기도 울음을 터트렸다. 으앙 꾹- 으앙 꾹- 아기들이 줄지어 뻐꾸기처럼 우는데, 도무지 그 속에서 고요를 분간해 낼 수 없었다. 갑자기 커다란 두려움이 몰려왔다. 당장 내일 퇴원하고 집으로 가야 하는데, 고요를 잘 키울 자신이 없었다. 내 배에서 나온 아기지만 나는 고요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