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랑 엄마 (1)
20년 전, 오랜 병원 생활을 끝내고 엄마가 퇴원하는 날에 맞춰 아빠는 집 도배를 전부 새로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엄마가 구석구석 직접 닦고 쓸며 관리한 집이었다. 엄마가 병원에 머무는 동안 손 닿지 않는 곳마다 먼지가 쌓이고 많은 물건이 제자리를 잃었지만, 벽지가 새로 붙고 나니 티 나지 않을 정도로 말끔해 보였다.
엄마는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났다. 뇌를 여는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던 두 달 동안 의사들은 아빠에게 엄마를 포기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아빠는 말을 듣지 않았다. 의사가 호명할 땐 반응이 없어도 ‘인금아’ 하고 부르는 자신의 목소리는 꼭 듣는 것 같다며, 그런 엄마를 그냥 보낼 수 없다고 했다. 두 달 후 엄마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깨어날 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던 아빠조차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싶다. 눈을 깜빡이며 의사소통을 시작하고, 칠판에 글을 써 대화하고, 음식 섭취를 위해 목에 냈던 구멍을 다시 막고, 말하기를 새롭게 연습하고, 매일 재활훈련과 통증 치료를 받고, 오른쪽 몸의 힘과 지팡이에 의지해 걷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집으로 돌아온 첫날, 엄마는 아빠에게 말했다. “당신이 나 구했으니 평생 책임지세요.” 이 일화를 처음 들었을 때 “역시 우리 엄마! 너무 당돌한 거 아니야?”하며 나는 박장대소했다. 엄마는 부끄러운 듯 입을 가리며 웃었지만, 손등 위로 보이는 눈 모양이 꼭 장난기 가득한 옛 모습 그대로였다. 아빠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엄마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새 벽지를 바른 집으로 엄마가 걸어 들어올 날을 아빠가 손꼽아 기다려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평생 책임지라는 말은 너무 발칙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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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엄마는 아주 당찬 사람이었다. 학부모회에서 요직을 맡아 하루 종일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사람. 재밌는 대화가 벌어지면 언제나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리 집 거실에 모이면 과일을 깎으러 부엌에 들어가서도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사람. 22년 전 엄마는 목소리가 우렁차고, 크게 웃고, 할 일이 많아 바쁜 사람이었다. 장내를 휘어잡는 엄마의 자신감은 어린 나의 자랑이었다.
그랬던 엄마가 이제는 주로 식탁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주방에 있어 말이 식탁일 뿐이지, 집안 대소사를 계획하고, 일주일 치 식단표를 짜고, 보험 이모와 둘러앉아 서류를 검토하는 엄마의 작업 책상이다. 그곳에서 엄마는 무언가를 계속 쓴다. 일기, 장 볼 목록, 가계부. 엄마는 말했다. “사고가 난 후에 마음이 작아졌는지 글씨도 같이 작아졌어.” 엄마의 글씨는 작기도 하지만 꼬불거린다. 노트를 받쳐 줄 왼손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줄도 안 맞는다. 사고로 뇌를 다친 탓에 대상이 둘로 보이는 복시이기 때문이다. “엄마, 그건 엄마 몸이 불편해서 그런 거지. 마음이 작아져서 그런 거 아니야.” 나는 내가 엄마를 엄마 자신보다 더 잘 안다는 듯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