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 죽이기
“어제 합평 모임에서 모범생 같다는 말 또 들었어.”
거실 식탁 옆에 앉아 아침밥으로 남편이 잘라다 준 사과를 씹으며 내가 말했다. 작년 여름부터 참여하고 있는 합평 모임이 여섯 번 반복되는 사이, 기수마다 꼭 한 번씩 듣는 평이었다.
’잘 쓴 글인데 재미가 없어요.’
‘술술 읽히기는 하는데....’
‘모범생이 쓴 글 같아요.’
다른 류의 별로라는 평가는 그냥 흘려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말들은 지긋지긋하게도 잊을 수가 없었다. 마음씨 좋은 합평 동료들은 별로라는 평을 전할 때면 짐짓 어색한 표정으로 웃곤 했다. 웃는 낯에는 침 뱉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합평을 휘갈겨 메모한 내 글을 며칠 동안 반복해서 읽으며 그 위에 침을 뱉었다. 대체, 퉤. 왜, 퉤. 나는, 퉤. 모범생 같은, 퉤. 글에서, 퉤. 벗어나지, 퉤. 못하는 걸까, 칵- 퉤. 이런 평을 듣고 나면 내가 써온 글, 내가 쓰고 싶은 글, 그런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기질, 하지만 내가 타고난 기질에 대해 고심하면서 존재론적 고민에 빠지곤 했다.
“사람들이 정확히 뭐라고 했는데?”
“말 그대로 모범생 같다고 했어. 결국 재미없다는 뜻이잖아. 대체 재밌는 글은 어떻게 쓰는 거지?”
나는 삼 년 동안 준비한 시험을 망친 수험생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남편은 진지한 얼굴로 생각에 잠기더니, 갑자기 콧구멍을 살짝 벌렁거렸다. 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가 늘 짓는 표정이었다.
“‘똥꼬는 순우리말이다.’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한 번 써봐.”
“???”
갑작스러운 똥꼬 타령이 당황스러웠다. 나는 진지충인데 지는 이만큼이나 재치 있는 사람이라고 차력 쇼라도 하는 건가? 하지만 분명 웃겼다. 똥꼬.... 똥꼬라.... 바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으나 내가 과연 이걸 글로 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흠, 아마 쓰지 못할 거다. 나를 가로막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수치심? 사회적 자아?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남자는 똥꼬를 주제로 분명 한세월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남편과 나 사이에 있는 차이는 대체 무엇일지 궁금했다. 진짜 똥꼬를 주제로 글이라도 써봐야 하나.
“나는 왜 이렇게 재미없는 사람일까.”
내가 이렇게 한탄하는 날이면 남편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나는 재미없는 사람이랑 결혼한 적 없어! 우리 은비가 얼마나 재밌는 사람인데!’ 하고 나를 우쭈쭈해 줬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는 나를 혼내듯 칭찬했다.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이내 우리의 대화는 ‘재밌는 글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흘러갔다. 웃긴 글과 재밌는 글의 차이, 웃겨야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는 요즘 트렌드, 결국 많이 읽고 많이 써야 잘 쓸 수 있다는 정론까지. 이른 아침부터 6개월 된 딸을 옆에 앉혀놓고 아침을 먹으며 부부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마저도 범생이 같다고 할까?
“그냥 힘을 좀 빼고 써봐. 이완- 명상-“
요즘 새벽 요가에 다니는 그가 선생님을 따라 눈을 감으며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자 나는 울컥 화가 났다.
“나는 힘 빼라, 그냥 아무렇게나 해봐라, 이런 말 들으면 너무 열 받아. 생긴 대로 살지 말라는 소리 같다고 해야 하나? 나는 매사 힘 빡 주고 정석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데. 그렇게 말할 거면 나한테 힘 빼는 법을 알려주던가, 아니면 내가 힘 빼고 사는 동안 나 대신 힘 주고 살아주던가. ‘둘 중 하나는 해라, 처맞기 전에.’ 이런 생각 들어.”
갑자기 와다다 쏘아대는 나 때문에 놀란 남편에게 ‘너한테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하고 하소연을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학창 시절 나는 공부를 징그럽게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주어진 시험 범위를 네다섯 번 반복해 읽고, 암기하고, 시험을 월등하게 잘 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을 좋아했다. 내 싹수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남달랐는데, 부모님 포함 아무도 나한테 공부하라 시킨 적이 없었음에도 방학마다 다음 학기 전과를 사다가 혼자 풀어보곤 했다. 이런 내 기질은 한국형 입시 과정과 만나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공부하면서 웃는 사람을 본 적 있는가? 복잡한 풀이를 해설과 똑같이 써냈을 때, 30쪽 분량의 시험 범위를 한 글자도 빠짐없이 모두 외웠을 때, 집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남은 사람이 나뿐이라서 깜깜해진 독서실을 바라볼 때 혼자서 씩 하고 웃는 나는 타고난 공부 변태였다.
문제는 정답을 맞히려고 노력할수록 누구든 써낼 수 있는 뻔한 답안에 도달한다는 거였다. 특히 내가 쓴 글은, 뭐랄까, 흠잡을 데 없지만 매력도 없는 매끈한 동그라미 같았다. 나라는 함수 상자에는 심지어 똥꼬를 넣어도 어디로 흘러갈지 뻔히 보이는, 구조와 문장은 안정적이지만 그게 전부인 글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글쓰기마저 잘하고 싶어서 난리일까. 남편은 어떤 회사에도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3개월씩 찍먹만 하던 타고난 아웃사이더였다. 그에 비하면 어떤 회사에 들어가도 대표가 가장 사랑하는 직원이 되는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쫌 달라 보이고 싶어 하는 모범생’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우리 딸이 나 닮아서 틀에 박힌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엄마, 나는 대체 왜 이럴까?’하고 물어보면, 너의 그런 모습도 스스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해주질 못할 것 같아. 그런 말은 나 대신 네가 해줘.”
남편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고 나는 그런 상상을 하고 나니 한없이 우울해졌다. 아무래도 조만간 똥꼬에 관한 글을 꼭 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