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스펀지
아무리 생각해도 버려 마땅한 그 옷을, 남편은 끝까지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러고는 비에 젖은 새끼 고양이 마냥 불쌍한 표정을 하며 나를 쳐다봤다. “그래도.... 이건 고등학교 때 받은 티셔츠란 말이야.” 나는 이런 식이면 버릴 옷이 하나도 없다고, 옷장을 정리하는 보람을 위해서는 높은 기준을 가지고 옷을 분류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그는 옷이 몸에 맞는지 체크할 때 사람들이 으레 하는 것처럼, 보라색 반팔 티셔츠를 자신의 상체 앞쪽에 가져다 대더니 미련 가득한 손길로 가슴팍을 쓸어내렸다. 15년 전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아시안 남학생에겐 딱 맞았을 그 티셔츠가, 이제는 볼품없이 작아 보였다. 티셔츠 앞판에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커다란 바이킹 칼을 든 불독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분명 가톨릭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마스코트가 이렇게 폭력적이지?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다시는 그가 입을 일도, 입을 수도 없는 옷이었다. 하지만 나는 불쌍한 척 구는 그의 얼굴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옷을 옷걸이에 걸었다.
세상 사람들을 백 가지 기준을 가지고 두 부류로 나눈다면, 나와 남편은 아흔다섯 번 정도 서로의 반대편에 서야 할 것이다. 물론 잘 맞는 다섯 개의 기준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행복한 결혼 생활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지만, 가끔은 이 남자의 행동과 표정이 낯설게 느껴질 만큼 우리는 아주 다른 사람이다. 물건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차이는 더 두드러진다. 그는 행사에서 받아온 기념품이나 친구가 준 선물을 집에 소중히 모셔두는 사람이다. 남편의 책상에는 늘 잡동사니가 넘쳐난다. 이건 만들기 모임에서 바느질한 팔꿈치 쿠션, 이건 봉사 활동하는 곳 원장님이 주신 부활절 카드, 이건 국립중앙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사 온 장난감, 또 이건.... 끝없이 늘어가는 쓰임 없는 물건들이 그의 영역을 넘어 책장, 선반, 옷장을 점령하기 시작하면 나는 하루 날을 잡아 그 물건들을 청산하기 시작한다. 내가 과감히 ‘버릴 것’으로 빼둔 물건들을 그는 스리슬쩍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물건을 자꾸 꺼내보는 것도 아니면서, 마치 물건에 담긴 순간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걸 전시라도 하듯 그는 주변에 물건을 널어두고 산다.
남편이 물건을 모으는 사람이라면, 나는 쉽게 버리는 쪽이다. 나는 취향에 맞지 않는 선물은 고맙다며 받고서도 집에 오자마자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곤 한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물건은 물건이니까. 어차피 쓰지 않을 물건은 바로 치우는 게 효율적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내가 사는 공간에 모든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마음이 편한 사람인데, 살림이 많아지면 아무리 신경 써서 정리해도 물건의 행방을 파악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물건을 살 때도 이걸 어디에 둘 지 먼저 생각하고, 둘 공간이 마땅치 않다면 절대 사지 않는다. 10년간 타지에서 원룸을 전전하며 살아온 세월이 나를 물건의 쓰임과 공간 활용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물건에서 낭만을 찾는 그와, 물건과 함께 사는 효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 미루고 미뤄왔던 옷장 대청소가 끈질긴 입씨름으로 이어지는 일은 불 보듯 뻔한 전개였다.
“이거 몰래 갖다 버려도 너는 눈치 못 챌걸? 마지막으로 이 옷 입은 게 언제인지 기억하긴 해?” 남편은 옷 정리를 싫어했다. 그의 눈에는 버릴 옷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내가 부르면 너는 잠깐 와서 버려도 되는 옷인지 판단만 해줘’라는 말에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몇 개는 물어보지도 않고 버리는 옷더미 속에 몰래 숨겨버렸다. 그래도 애매한 옷을 발견하면 나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소중한 걸 잃을까 겁이 난 남편은 화들짝 달려와서 여러 가지 방어 전술을 구사하며 옷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아니아니, 이건 절대 안 돼. 이건 진짜 소중한 거야. 아니아니, 이것도 안돼. 이거 진짜 비싸게 주고 산 거야. 아니아니, 이건 정말 안 돼. 돌아가신 아빠가 입던 옷이야. 아니아니, 이건 선물 받은 거란 말이야. 하지만 이런 핑계에 관대해지기엔, 우리가 나누어 쓰는 옷장이 너무 좁았다. 옷을 정리하는 내내 실랑이가 반복됐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없이 그에게 졌다. 살아남은 옷들은 그의 추억과 함께 차곡차곡 옷장에 걸렸다.
몇 해 전, 당시 남자 친구였던 그가 아침 일찍 사진 한 장을 메시지로 보내왔다. 사진 속에는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그가 우쿨렐레를 들고 있었는데, 진지한 표정으로 연주를(하는 척) 하는 모습이 웃겼다. 위쪽에는 촌스러운 글씨체로 ‘민석이의 콘서트에 당신을 초대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행사의 일시와 장소는 더 가관이었다. 날짜는 오늘이고 장소는 내가 살던 전셋집 옷방이었다. 집에 도착한 나에게, 그는 자신이 콘서트를 준비하는 동안 잠깐 집에서 나가 있어 달라고 했다. 내 집에서 쫓겨난 나는 근처 카페에서 준비가 끝났다는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그가 며칠 전부터 프러포즈 준비로 바쁘다는 걸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모른 척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허술한 그의 작전이었지만, 그가 이 정도로 성대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노출식 옷걸이로 둘러싸인 옷방이 노란 풍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뒤쪽 벽면에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는데, 거기엔 ‘은비야, 나랑 결혼해 줄래?’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는 흰 와이셔츠 대신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티셔츠 앞에는 ‘겸손’이라는 글씨가 적힌 노란 스펀지 사진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일명 겸손한 스펀지, 줄여서 겸펀지였다. 당시에 그는 ‘겸손하되 스펀지처럼 세상에 멋진 것들을 쫙 빨아들이며 살자’는 메시지에 꽂혀있었다. 그 태도를 축약해서 ‘겸펀지’라 칭했는데, 스마트폰 합성 앱으로 만든 그 사진을 프러포즈하는 날 가슴팍에 박고 있을 줄이야. 그는 들고 있던 노란 프리지어 꽃다발과 겸펀지 티셔츠 M 사이즈 한 장을 나에게 건넸다. 이걸로 갈아입으라는 건가? 나는 이 휘황찬란한 상황이 웃겨서 깔깔대며 옆 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객석에는 식탁 의자를 가져다 놓은 좌석 하나뿐이었다. 나는 그곳에 앉아 프러포즈를 여는 그의 식순 멘트를 들었다. 1부는 편지 낭독이었다. 편지를 듣는 내내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웃기만 했다. 2부는 초대장에 나온 대로 그의 우쿨렐레 연주로 채워졌다. 나는 그가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걸 그날 처음 봤다. 악기는 어디서 났냐고 묻자 당근에서 5만 원 주고 샀다고 했다. 도입부부터 실수를 계속해서, 인트로만 다섯 번 정도 들어야 했다. 나는 자기가 깔아놓은 판 위에서 혼자 어색해하며 쩔쩔매는 그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하루치 낭만을 위해 현수막을 주문하고, 티셔츠를 맞추고, 우쿨렐레를 사는 노력이 참 가상했지만, 이 쓰레기들을 언제 다 치우나 하는 현실적인 생각도 함께 들었다. 나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아무런 의심 없이 하는 그를 보며 나는 저항 없이 픽하고 웃어버렸다. 나는 이 아이와 평생을 하는 수 없이 함께 살겠구나 하고 그때 깨달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우쿨렐레를 꺼내 든 남편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는 내가 우쿨렐레를 어디에 뒀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프러포즈를 위해 준비한 현수막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모든 세레모니가 끝난 후 현수막을 고이 접어서 리빙박스에 담았다. 그 안에는 닭 모양 잠옷이 들어있었는데, 몇 달 전 내 생일날 초가 꽂힌 케이크를 들고 남편이 입고 있던 옷이었다. 우리가 닭띠니까 닭 모양 잠옷을 샀다나 뭐라나. 리빙박스엔 아무 라벨도 붙어있지 않았지만, 나만 알고 있는 구분법에 따르면 그 안에 담긴 물건들은 ‘좋은 타이밍을 잡아 언젠가 버릴 것’들이었다. 그가 자신이 벌인 이벤트에 대해 조금씩 잊어갈 때쯤, 나는 그 물건들을 슬그머니 내다 버렸다. 완전 범죄였다.
하지만 겸펀지 티셔츠만큼은 예외였다. 이벤트를 위한 일회용 티셔츠라 생각했던 나와 달리, 남편은 여름이 되면 그 샛노란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대체 이게 무슨 티셔츠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그는 특유의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겸손한 스펀지가 되겠다는 뜻이에요”라고 답했다. 설명을 듣고 오히려 물음표가 더 커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즐거워 나는 차마 겸펀지로 살겠다는 남편을 말릴 수가 없었다. 물론 겸펀지 티셔츠를 입는데 동참하는 것은 완전 별개의 문제였다. 그와 달리 나에게는 겸펀지에 관해 당당히 설명할 배짱이 없었다. 해가 지날수록 그의 겸펀지 티셔츠는 목이 늘어나고 프린트된 사진 역시 점점 옅어졌다. 하지만 내 티셔츠는 단 한 번의 세탁도 거치지 않은 채 새것 그대로였다.
리빙 박스에 담지도, 그렇다고 입고 다니지도 못할 겸펀지 티셔츠가 지금 내 손안에 있다. 옷장을 정리하다 발견한 이 노란색 티셔츠를 손에 쥐고 나는 생각했다. 모든 것이 허술했던 그의 프러포즈는, 청혼에 대한 내 대답을 그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가 좇는 낭만은 매사에 빡빡한 나를 늘 느슨하게 풀어버린다. 남은 인생을 이 사람과 함께 헐렁헐렁 살고 싶다 생각했던 그 날을 이렇게 추억할 수 있게 해주는 것만으로 겸펀지 티셔츠의 쓰임은 충분할 것이다. 나는 옷을 반듯하게 펴서 옷걸이에 걸었다. 물론 겸펀지 티셔츠를 입고 길거리를 돌아다닐 날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새것인 상태 그대로, 이 옷이 아주 오랫동안 내 옷장에 남아있을 거란 사실 하나만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