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감을 나누는 사이
'도전'과 '용기'를 기준으로 새로운 이력서를 작성한다면, 내 이력서 첫 줄에는 <식당 치지레이지 창업>이 볼드체로 적혀있을 것이다. 관련 경험이 없었던 나와 강단에게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지만, 식당을 열기 위해 기약 없는 준비 기간을 가져야 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 두 번째이자 마지막 회사를 퇴사하기 전까지 나는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었다. 내 일과 삶은 아주 단기적이고 명확한 목표 단위로 굴러가고 있었고, 모든 할 일에는 데드라인이 있었다. 하지만 식당을 여는 일만큼은 예외였다. 기한에 쫓겨 불완전한 음식과 공간을 세상에 내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만족할 만큼 갈고 닦겠다는 마음으로 시간을 쓰다 보니 1년이 훌쩍 지났다. 메뉴를 개발하고 식당 창업에 대해 공부하며 보낸 시간은, 도전적임과 동시에 끝없는 마라톤을 뛰는 것처럼 막막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 시간을 견뎌낼 용기가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돌아보니 새삼 궁금하다. 하지만 정답은 늘 가까이에 있다고들 하지 않는가. 내가 찾은 정답 역시 마찬가지다. 동업자이자 남편이자 내 가장 친한 친구, 강단이 없었다면 나는 그 애매모호했던 시간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결혼을 하면 책임감 때문에 위험한 선택을 회피하게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 정반대였다. 강단은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든다. 내가 한 달에 얼마를 버는지, 어떤 회사에서 무슨 직함을 달고 일을 하는지. 이런 건 강단에게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다. 강단은 나조차 무시하고 있던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주었다. 물론 그가 그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강단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일이 아니라면 하지 않았다. 그의 단호한 태도가 곁에 있는 나까지 스멀스멀 물들였다. 강단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더 무모해져도 괜찮겠다' 생각하고는 했다.
이런 사람이 강단 뿐이었을까. 운이 좋게도 내 주변에는 마음의 중심을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이에게는 두둑한 통장 잔고가,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이, 흠잡을 데 없는 커리어 패스가 마음의 안정감을 가져다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경우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주위에 많아질수록 더 무모하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누군가를 설득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 그냥 나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삶의 태도. 이런 것들이 내 몸과 마음에 안전하다는 감각을 새겼다. 현실만 두고 본다면 지금의 내 미래는 어느 때보다 불확실하다. 하지만 남들이 인정하는 학력, 안정적인 회사, 그럴듯한 직함 같은 것들이 보장하지 못했던 안정감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진하게 느끼고 있다.
이제 나는 가까운 사람들의 선택을 쉽게 재단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물론 어떤 날엔 '그렇게 하면 좀 비효율적이지 않나? 이렇게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또는 '저래도 괜찮은가? 별로인 것 같은데.'하는 주제넘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이런 마음은 꾹 누르고 진심을 담은 응원만 남긴다. 주변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도 자신과의 싸움에 져서 한 발짝 내딛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있고, 불안한 상황에서는 이상한 조언 하나에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기도 한다는 걸 나는 이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더 나은 결정을 위해 고민하고, 선택의 순간을 감당하고, 불안을 견디며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져야 하는 책임이 있다면, 그건 옳은 말을 한다는 핑계로 생각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자신답게 서 있을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